라떼라는 음료는 어떤 것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어떤 음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전국 어디 카페를 가든 “라떼 주세요”라고 주문을 하면 “그게 뭔데요?”라고 되묻는 법은 없다는 뜻이다. 점원 혹은 바리스타가 이렇게 다시 물어볼 가능성은 매우 높다. “따뜻한 거 드릴까요?”(가을이나 겨울) 혹은 “아이스 맞으시죠?”(특히 여름) 정리하면 국내에서 라떼라는 표현은 통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라떼는 우유다. 나는 라떼라는 표현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떼는 카페라떼의 줄임말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줄임말인 ‘아아’와는 다른 형태로 카페라떼의 앞부분 카페를 생략해버린 경우다. 그런데 이렇게 카페라는 단어를 생략해버리면 이 음료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카페라떼는 이탈리아어 합성어인데 카페는 커피(Caffè)이고 라떼(latte)는 우유라는 뜻이다. 카페라떼를 직역하면 커피우유이고 카페를 생략하고 라떼라고 말한다면 우유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진다.

라떼를 주문하고 우유를 받았다고? 간혹 이탈리아 여행이나 출장 중에 라떼를 주문했더니 우유만 받았다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라떼는 국내 한정으로 카페라떼를 뜻하지만 이 말의 탄생지(?)인 이탈리아에 가서 “라떼 주세요” 하면 그냥 우유를 주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표현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라떼는 라떼다. 위에서도 썼지만 서로간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 카페에서 “라떼 주세요” 했는데 바리스타가 우유를 내어주는 경우는 없다. 카페라는 단어도 결국엔 커피라는 단순한 의미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해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카페라떼를 라떼라고 줄여서 불러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음료는 결코 달라지는 법이 없다.

라떼는 원래 따뜻한 음료다. 제일 첫 문단에 등장하는 라떼 주문 상황의 질문들을 기억하는가. 나는 보통 카페에서 “카페라떼 주세요”라고 주문한다. 나는 에스프레소에 스팀밀크를 부어서 만든 따뜻한 음료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는 사람은 왜 나에게 “따뜻한 걸로 드릴까요? 아이스 맞으시죠?” 따위의 질문을 하는 것인가? 나는 이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떼가 뭔 죄냐고. 인정한다. 나는 집착에 빠져 있다. 그냥 “따뜻한 라떼 주세요”라고 주문하면 끝날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집착에 대한 공감을 얻고 싶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콜라를 예로 들곤 했다. “자, 들어봐, 만약 네가 콜라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따듯한 거 드릴까요? 차가운 거 드릴까요? 라고 점원이 물어본다면 어떨 것 같아?”라고 말하고 다녔다. 딱 한 명이 “그러네요” 라고 나에게 공감해줬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주장하고 싶다. 콜라가 차가운 음료인 것처럼 라떼는 따뜻한 음료인 것이다. 

라떼 말고 아이스 라떼는? 집착의 끝에 다다르고 있다. 어쩌면 라떼와 아이스 라떼는 전혀 다른 음료일지 모른다. 아이스 라떼는 에스프레소에 스팀밀크가 아닌 그냥 우유와 얼음을 섞어서 만든다. 재료를 넣는 순서도 다르다. 라떼는 에스프레소를 잔에 먼저 담고 우유를 붓고, 아이스 라떼는 우유와 얼음이 든 잔에 에스프레소를 넣는다. 결정적으로 두 음료는 전혀 다른 질감이지 않은가. 커피와 우유만으로 만드는 음료는 더 있다. 카푸치노, 플랫화이트, 카페오레 등이 그렇다. 우리는 이 음료를 다 같은 음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라떼와 아이스 라떼를 명확하게 그만해서 사용하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해본다. 나도 기온이 30도 넘는 한여름에는 “아이스 카페라떼 주세요” 라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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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덧붙인다.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카페라떼를 주문했더니 묻지도 않고 아이스 카페라떼를 줘서 열 받았다는 글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 글의 댓글에는 글쓴이에 대한 비판이 가득했다. 따뜻한 걸 달라고 했으면 되지 않느냐, 이 더위에 아이스로 주는 게 당연하지 등의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그 댓글이 틀렸다고 지적하고 싶진 않다. 그렇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긴다. 그럼에도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래서 전해질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그에게 조금이라도 공감의 마음을 보내기 위해 이 잡글을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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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roman)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흔히 사용하는 말로 로망은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유럽 배낭여행을 가는 게 로망이에요’처럼 쓰인다. 이렇게 쓸 수도 있다. ‘포르쉐 터보 S를 사는 게 로망이에요.’ 두 개의 예문에서 로망 대신 쓸 수 있는 말로 꿈이 있다. 로망 대신 꿈을 넣고 예문을 읽어보자. 전혀 어색하지 않다. 고로 로망은 꿈의 다른 표현이다. 어째서 로망은 꿈이 되고 꿈은 로망이 됐을까. 로망은 국어사전에 등재된 말이다. 문학 용어라고 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12~13세기 중세 유럽에서 발생한 통속 소설. 애정담, 무용담을 중심으로 하면서 전기적(傳奇的)이고 공상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일단 넘어가자. 사전에는 로망과 비슷한 말로 로맨스(romance)가 등장한다. 좀더 익숙한 단어다. 로맨스 드라마, 로맨스 영화의 그 로맨스다. 도대체 어떻게 통속 소설을 뜻하는 로망/로맨스가 꿈이 됐을까. 로망과 꿈 사이에 낭만이 있다. 로망/로망스/로맨스라는 문학 장르가 동아시아 한중일 3개국에서 ‘浪漫’이라는 한자어로 번역 소개됐다. 일설에 따르면 일본의 소설가 나츠메 소세키가 프랑스어 roman을 발음이 비슷한 한자인 浪漫으로 썼다고 한다. 이 한자의 일본어 발음은 로망(ろうまん), 한국어 발음은 낭만이다. 참고로 중국어 발음도 낭만이다. 이제 실타래가 풀렸다. 로망은 낭만과 같은 말이다. ‘남자의 로망’과 같은 표현은 꿈보다 낭만이 로망을 대체하는 말로 더 어울린다는 걸 보면 로망이 낭만과 같은 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정리해보자. 내가 하고 싶은 여행, 갖고 싶은 차는 낭만적인 것이다. 낭만은 로망의 같은 말이기 때문에 유럽 배낭여행과 포르쉐 터보 S가 로망이 됐다. 응? 무슨 말인지 내가 쓰고도 잘 모르겠지만 지나친 의미의 확장 같다. 개인적으로는 로망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본에서 수입된 엉터리 영어 표현처럼 느껴진다. 나라면 로망 대신 그냥 꿈이라는 표현을 쓰겠다. 그렇지만 말을 쓰임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젠가 로망이 국어사전에 꿈, 낭만이라는 의미로 등록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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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세(上昇勢), 하락세(下落勢), 유명세(有名稅). 세 단어에서 ‘세’의 한자가 다르다. 한자가 다르다는 말은 뜻이 다르다는 말이다. 상승세와 하락세의 세는 기세(氣勢), 형세(形勢)의 세다. 상승세가 가파르다,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상승세를 탔다 등으로 쓸 수 있다. 유명세의 세는 세금(稅金)의 세다. 유명세는 유명해서 내는 세금을 뜻하는 단어다. 실제로 유명해졌다고 세금을 내지는 않는다. 세금은 비유적인 표현이다. 유명해지면서 겪는 여러 귀찮고 피곤하고 곤란한 일들을 상징한다. 유명세가 실제 세금은 아니지만 말이 만들어진 속성은 상속세, 증여세 등과 같다. 상속세가 상속을 받아서 내는 세금이고, 증여세가 증여를 받아서 내는 세금인 것처럼. 따라서 유명세가 따르다, 유명세를 치르다 등으로 쓸 수 있다. 각 단어의 세가 지닌 뜻을 명확하게 나타내기 위해 상승세를 상승기세로 유명세를 유명세금으로 쓴다면 유명세를 타다라는 표현이 왜 틀린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터넷에도 신문에서도 방송에서도 유명세를 타다라고 쓰고 있다. 이쯤되면 기세와 형세를 뜻하는 세(勢)를 쓰는 유명세 역시 표준어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어떤 사람이나 유명한 정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뜻하는 단어가 딱히 생각나지도 않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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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션’이라는 말은 2020년 6월 3일 현재 어떤 사람이 흥분된 정도 혹은 흥이 난 정도를 뜻한다. 보통 ‘텐션이 높다’ ‘하이 텐션’ ‘저 세상 텐션’ 등의 용례를 보인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텐션은 일본식 영어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기백, 기세, 흥분도와 같은 의미로 일본에서 쓰던 말이 국내에 건너왔다는 것이다. 영어사전에는 텐션(tension)이 긴장, 불안 등의 의미라고 정의한다. 이를 테면 미중 갈등으로 국가간 텐션이 높아지고, 무서운 공포 영화를 볼 때 관객의 텐션이 높아진다고 쓸 수 있겠다. 그밖에 텐션에는 당기는 힘을 뜻하는 장력(張力)의 의미도 있는데 지금 널리 쓰이는 텐션의 의미는 여기서 비롯된 듯하다. 세상 모든 말을 꼭 본래의 뜻에 맞게 사용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텐션이라는 대체할 만한 적당한 용어도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이런 경우를 상상해볼 수는 있겠다. 신나게 웃고 떠들고 있는 영어권 언어를 쓰는 사람에게 “오늘 텐션 좋네”, “텐션 높네요”라고 말한다면 상대방은 ‘엥?’ 하면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 텐션처럼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측되는 말 가운데는 본래 영어와 그 뜻이 다르거나, 발음이 다르거나, 영어권에서 쓰지 않는 일본식 영어인 경우가 더러 있다. 더치 커피, 스킨십, 샐러리맨, 하이틴 등은 영어권에서 쓰지 않는 일본식 영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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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7일 현재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쓴 글 속에서 ‘몇 일’(혹은 몇일)을 본다. 언론 매체에서도 더러 몇 일이라는 말을 볼 수 있다. 국립국어원은 몇 일을 틀린 말로 규정하고 있다. 몇 일 대신 써야 할 바른 말은 며칠이다. 몇 월 며칠, 며칠 동안, 며칠 사이에, 며칠 날 등.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문장 속에서도! 정말로 몇일이라고 써야 맞는 것 같아도! 사실 모두, 싹 다, 하나도 빠지지 않고 며칠이라고 쓰는 게 한글 맞춤범 규정에 맞다. 단 몇 날은 가능. 대다수의 사람들이 몇 일을 사용하고 있다. 간혹 며칠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 이정도면 몇 일도 옳은 말로 인정해야 될 정도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특히 몇 월 며칠과 같은 표현을 어색하게 느끼는 것 같다. 이건 누가 봐도 어색해보인다. 이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한 고등국어 강사가 2008년 6월 7일에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에 문의한 내용을 찾았다. 국립국어원의 답변은 이렇다. 1. 며칠은 몇+일(日)에서 비롯됐다. 2. 합성어 몇일은 원칙상 [면닐]로 발음해야 한다. 3. 그런데 우리는 [며칠]이라고 발음한다. 4. 그래서 며칠을 표준어로 정했다. 국립국어원의 답변이 이해가 되는가? 그냥 몇일로 쓰고 며칠로 발음하면 될일 아닌가. 한글에서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왜 나는 몇 일로 쓰는 사람들을 보면 신경이 쓰일까. 피곤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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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시절’은 2020년 5월 20일 현재 누군가의 ‘젊은 시절’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리즈 시절의 기원은 축구 커뮤니티다. 리즈 유나이티드라는 영국의 축구팀에 대한 게시글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영국의 웨스트요크셔주에 위치한 리즈(Leeds)는 모직 산업이 발달했던 도시다. 이 도시를 연고로 한 축구팀 리즈 유나이티드 FC(Leeds United F.C.)는 현재 EFL 챔피언십에 속한 프로 축구팀이다. 프리미어 리그가 1부라고 한다면 리즈 유나이티드는 2부 리그 소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리즈 유나이티드는 1919년 창설한 구단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오랜 기간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3회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는 로즈 더비(Rose Derby)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치열했다. 이런 화려한 역사는 2003~04 시즌의 챔피언십 리그 강등 이후 잊히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조금씩 늘어난 국내의 영국 축구 팬들은 리즈 유나이티드의 과거를 알기 쉽지 않다. 골수 팬들이나 리즈 유나이티드의 과거를 알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리즈 시절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리즈 유나이티드의 그때 그 시절을 너희가 아느냐”라는 뉘앙스 혹은 당시 젊은 유명주 미드필더인 앨런 스미스가 2부 리그로 강등된 리즈 유나이티드를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이후 활약이 영 별로여서 팬들이 “앨런 스미스는 리즈 시절에 끝내줬는데”라고 한 것에서 파생됐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후자의 경우가 리즈 시절이라는 말의 탄생 기원에 가까워 보인다. 정리하면, 리즈 시절의 본래 뜻은 누군가의 과거에 화려했지만 지금은 그 빛을 잃어 버리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상황을 의미한다. 이후 단순한 과거, 누군가의 젊은 시절로 의미가 확장됐다. 말의 기원을 따져볼 때 ‘강동원의 리즈 시절’, ‘이병헌의 리즈 시절’은 의미가 정확하지 않다. 강동원과 이병헌은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널리 알려진 스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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