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글을 세 번째 다시 쓰고 있다. 이유는 실수로 두 번이나 알 수 없는 단축키를 누르는 바람에 크롬 브라우저가 종료됐기 때문이다. 이 글의 주제는 나는 왜 <드라이브 마이 카>를 재밌없게 봤을까다. 첫 번째는 나름 진지하고 길게 쓰려고 했고, 두 번째는 첫 번째 글의 축약본으로 대충 쓰려고 했다. 이제 세 번째인데 어떻게 쓸지 고민 중이다. 솔직히 글을 쓰려는 의지나 기세가 꺽인 참이라 나를 두 번이나 열받게 한 그 단축키가 뭔지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영화의 주인공인 가후쿠와 그를 연기한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라는 두 단어 가운데 하나를 타이핑하는 과정에서 단축키가 작동했다. 어쩌면 컨트롤+F를 누르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컨트롤+C 혹은 컨트롤+V를 누르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크롬 단축키인지 윈도 단축키인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글이 날아갔을 때 그 단축키를 찾으려고 잠깐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두 번째 글이 날아간 지금 다시 그 단축키를 찾으려고 했지만 또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두 번의 글과 두 번의 단축키 찾기 시도 모두 실패했다.

블로그의 임시저장 버튼을 꼭꼭 누르며 다시 써본다. 나는 왜 <드라이브 마이 카>를 재밌게 보지 못했을까. 이유는 아마도 세 가지인 것 같다.

1. 거실 소파에서 보다가 자다깨다 했다. 놓친 부분을 모두 돌려봤지만 극장에서 본 것과는 많이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2. 먼저 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이 별로였는데 그 영향이 아닐까 싶다.

3. 공감 능력 부족. 사실 3번이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의미가 있는 부분이다. 최근에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데 나라는 인간은 타인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것 같다. 과거에는 이 부분에 대해 부정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드라이브 마이 카> 같은 영화는 이해하기 힘들다. 아내의 외도와 죽음, 그것의 미필적 방관. 그 사이의 어떤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는 주인공. 그것은 어떻게 다국적 언어로 만들어지는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와 연결되는 것인가.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가 그의 운전사인 미사키(미우라 토코)에게 아내 오토(키리시마 레이카)의 음성으로 녹음된 연극 대본에 대해 설명을 해준 것 같기도 한데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와 달리 미사키는 가후쿠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또 하나. <바냐 아저씨> 연극을 연습하는 다국적의 배우들. 그들 자신의 모국어로 연기를 하는 배우들. 특히 수어로 연기하는 이유나(박유림)와 중국어로 연기하는 재니스 창(소니아 위안)의 열연은 대단해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금 뭔가 일어났다”는 가후쿠의 대사에서 나는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아마도 그 진지한 태도가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왜 다른 언어로 소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나. 참고로 오래 전에 본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린다린다린다>가 생각난다. 배두나가 연기한 한국인 캐릭터와 카시이 유우가 연기한 일본인 캐릭터가 각자의 모국어로 감정이 통하는 짧은 대화를 하는 장면을 보고 감탄한 적은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거부의 대상이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이런 성향은 두드러지고 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모든 영화의 캐릭터에 감정이입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아직까지는. 유독 그런 영화들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종류의 영화들. 그 작품들은 아마도 섬세한 감정을 다루는 작품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아사코>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재밌게 보지 못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와 유사한 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도 그런 편이었다. 국내 영화 가운데는 김종관 감독의 작품이 모두 별로였다. 특히 <최악의 하루>는 정말 최악이었다.

드디어! 두 번째 글의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 쓴 것 같다. 이제 그만!

세 번째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하는데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글을 쓰면 쓸 수록 단지 영화를 대충 본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시 보면 달라질까. 당장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나중에 <드라이브 마이 카>를 다시 보고 이 글을 쓴 걸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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