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봉준호 감독의 대단한 점이라고 할까. <기생충>을 본 사람들이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때 중요한 지점은 ‘자신만의’이라는 단어다. ‘내가 본’, ‘개인적인’과 유사한 의미로 볼 수 있다. 다시 봉준호의 대단한 점을 얘기해보자. 봉준호는 <기생충>을 수직구조로 짜여진 빈부(貧富)의 영화로 만들었다. 지하실, 계단, 수석 등 몇 가지 장치를 통해 계급 문제를 끌어왔다. 냄새라는 요소는 기가 막힌 한 수였다. 이 요소들에 대해 사람들이 해석을 만들어낸다. 사실 영화 속 어떤 요소라도 나만의 해석을 할 수 있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보여지는 양말에도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봉준호 감독이 의도했던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 해석이 그럴싸한가 아닌가의 문제다.

<기생충>은 해석의 여지가 많은 영화다.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을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떻게 될까. 명확하지 않다는 말이다. 왜 수석은 중력을 거스르고 물에 뜨는 것일까. 왜 기우(최우식)는 수석에 그렇게 맞아도 죽지 않은 것일까. 영화는 보여주지 않고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내가 못 보거나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기생충>은 친절하지 않은 지점이 있다. 해석은 우리의 몫이다. 각자의, 자신만의, 개인적인 해석이 그렇게 생산된다. 정답은 없다. <기생충>은 수많은 관객의 경험에서 비롯된 해석이 가능한 영화다. 아직 봉준호가 왜 대단한지 얘기하지 않았다. 불친절한 영화, 설명해주지 않는 영화는 많다. 때로 지나치게 불친절한 경우, 사람들은 영화를 욕한다. 재미없다고. 

봉준호의 <기생충>은 재밌다. 불친절한 영화가 재밌다니. 봉준호는 어떻게 불친절하면서 재밌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나.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다. 내가 궁금한 건 누군가의 그럴싸한 해석이 아니다. 정말 궁금한 건 어떻게 재밌게 만들었냐는 것이다. 어떻게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해석이라는 영역인 것 같다. 영화의 재미를 분석하는 건 플롯, 연출, 편집, 미장센…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구조, 스토리의 배치, 배우의 연기, 대사의 결, 컷의 연결, 카메라의 앵글과 프레임, 조명의 사용… 또 뭐가 있을까. 답답하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재미를 만들어냈는지 설명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봉준호가 왜 대단한지 말할 수 없다. 이야기가 재밌으니까 재밌는 거 아니냐고.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도 궁금하다. 봉준호는 <기생충>의 재미를 어떻게 만들었나. 수석의 의미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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