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키보드를 구입했다. 구입하게 된 경위는 특별한 게 없다. 몇 해 전부터 기계식 키보드라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갑자기 그 ‘키감’ ‘타건감’이라는 게 궁금해졌다. (개인적으로 어떤 단어 뒤에 ‘감’을 붙이는 말을 싫어한다. 길이감, 깊이감 등) 한참 커뮤니티 등 인터넷 검색을 하고 레오폴드라는 브랜드의 키보드(FC900R PD)를 나만의 위시리스트에 올려두었다. 대략 13~14만원 정도 하는 제품이다. 사무실에서 쓰기에 좋은 저소음 적축이라는 형식의 스위치를 사용하는 걸로 골랐다. 기계식 키보드는 사용하는 스위치/축에 따라 취향이 달라진다고 한다. 직접 기계식 키보드를 만져보지 못해서 알 수가 없다. 용산 가기는 귀찮다. 유튜브를 켰다. 키보드 마니아들의 온갖 영상이 있었다. 최근에 지마켓에서 할인 행사를 한다길래 레오폴드 키보드를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정말 이 비싼 키보드를 사야 할까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대략 이틀 정도의 고민의 시간을 갖고 리얼포스라는 브랜드의 키보드(R2S-US5-IV)를 충동구매하고 말았다. 31만원이라는 가격에 구입을 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리뷰에서 “직접 타건을 해보시고 구매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했지만 귀찮아서 그냥 사버렸다. 부자냐고? 거지다. 직접 써본 키보드는 어떠냐고? 사실 잘 모르겠다. 앞서 언급했지만 기계식 키보드도 사용해본 적 없어서 좋은지 안 좋은지, 똥인지 된장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가 사용한 키보드는 10년 전에 나온 HP(Hewlett-Packard, 휴렛 팩커드) 컴퓨터의 번들(Bundle) 키보드와 대략 2009년에 나온 맥북, 2014년에 나온 맥북에어의 키보드밖에 없다. 그래도 뭔가 다르다는 건 느끼고 있다. 경박한 키보드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저소음 버전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꽤 오래 타자를 치면 손목이 아팠다. 55g이라는 키압 때문인 것 같다. 인터넷 고수들의 조언을 보고 예상을 하긴 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새 제품이 거의 없어서 그냥 이걸로 사버렸다.  그밖에 리얼포스여서가 아니라 영문 키보드여서 불편한 점은 한/영 키가 없다는 것, 오른쪽 알트(alt) 키를 누르면 한/영 변환이 되는데 기존에 쓰던 키보드와 구조와 달라 자꾸만 스페이스바를 누르게 된다는 것, 자음→한자 키를 이용한 특수문자 입력을 자주 하는데 한자 키가 없기 때문에 알트 키+숫자를 이용한 알트 입력법을 쓰거나 한자 키 역할을 하는 오른쪽 컨트롤(Ctrl) 키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 등이 있겠다.

국내 키보드 마니아들은 리얼포스 키보드에 대부분 ‘끝판왕’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붙인다. (제발 자신만의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서 쓰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도대체 왜 ‘국룰’(國Rule)이라는 걸 다 따르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직접 써보고 별로였다고 하더라도 ‘끝판왕이라고 불린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내가 사용해본 키보드의 경험으로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키보드가 끝판왕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대신 ‘명품 키보드’라는 표현은 가능해보인다. 품질이 좋다는 의미의 명품보다 사람들이 갖고 싶게 만드는 브랜드의 가치(희소성, 비싼 가격)라는 측면에서 명품 키보드라는 표현을 붙이고 싶다.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나도 써보고 싶은 마음, 그게 리얼포스 키보드의 진짜 가치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돈지랄’이라는 거다. 후회하냐고? 아니! 절대. 이렇게 돈지랄 해서 리뷰 같지도 않은 리뷰를 (회사 업무 시간에) 쓰고 있는 게 너무 재밌다. 그 돈을 냈으니 이런 글을 쓸 수 있다. 게다가 위에서 장점으로 언급한 부분, 경박한 키보드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점 이거 하나면 충분하다. 명품은 가성비로 사는 거 아닌 거 다 알지 않나. 나에게 리얼포스 키보드 구매는 성공적인 돈지랄 되겠다.

덧붙이는 말. 리얼포스 키보드는 토프레(topre, 東プレ)라는 회사가 생산한다. 1935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일본 주식시장에도 상장된 큰 회사다. 게다가 키보드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키보드는 이 회사의 사업 부문에서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주 사업 분야는 프레스 가공 기술을 이용한 자동차 부품이다. 이건 추측인데 사명의 ‘프레’(プレ)는 프레스(プレス)의 줄임말 같다. 토(東)는 도쿄(東京)의 줄임말 아닐까. 시뻘겋게 달궈진 철판을 프레스로 가공하는 영상을 볼 수 있는 토프레의 홈페이지 소개를 보면 아래처럼 돼 있다.  파파고로 번역해봤다.

-당사는 1935년에 자동차용 프레스 부품의 제조 개발 메이커로서 스타트했습니다.자동차의 골격등의 자동차 프레스 부품, 식재료등을 안전하게 전달하는 냉동 냉장차, 생활을 쾌적하게 하는 공조 시스템 제품, IT사회에 빠뜨릴 수 없는 전자 기기 제품등을 다루는 메이커입니다.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의 이름을 본 적은 없을지 모르지만, 여러 곳에서 여러분의 생활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当社は、1935年に自動車用プレス部品の製造開発メーカーとしてスタートしました。自動車の骨格などの自動車プレス部品、食材などを安全にお届けする冷凍冷蔵車、暮らしを快適にする空調システム製品、IT社会に欠かせない電子機器製品などを手掛けるメーカーです。普段の生活の中で私たちの名前を目にすることは少ないかもしれませんが、さまざまなところで皆様の生活を支えてお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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