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설렁설렁 라이딩을 다녀왔다
페달을 밟기 전에 우선 타이어에 바람부터 넣어야 했다
도무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자전거는 방치돼 있었다
또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비교적 최근에 기껏 자전거 들쳐 메고 1층으로 내려가서 페달을 밟는 순간
아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는 바로 자전거를 다시 들쳐메고 돌아왔었다
그래서 우선 걸어서 대략 200걸음 정도면 갈 수 있을 것 같은 근처 자전거포에 갔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마침 빨간색 미니벨로를 끌고 가는 얄샹하게 생긴 남자를 발견했다
망설임 없이 자전거포에 들어서서 "죄송하지만 바람 좀" 하고 굽신 거리는데
이 주인 아저씨가 너무 친절하다
아직 개업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주인 아저씨가 나의 자전거를 바로 알아보고는 "이 자전거 정말 오랜만이네요"라고 하는 거 아닌가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자전거가 부끄러워 "이거 정말 옛날에 나온 건데"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주인 아저씨이긴 하지만 다시 보니 나보다 나이는 어린 것 같은 사장님이 나의 자전거가 "미니벨로의 아버지"며 지난 번에 어떤 손님이 나의 자전거와 같은 모델을 찾았다면서 이런저런 말을 붙여준다
기름때가 잔뜩 묻은 손으로 사장님이 직접 공기를 넣어주는데
아까 봤던 빨간 미니벨로의 남자가 들어선다
"기어가 좀 이상하다"면서 "수리도 돼냐"고 묻는다
속으로 생각했다
'자전거포에서 수리가 가능하냐는 질문은 뭐냐'
그때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벽에 붙은 영어로 된 상장 같은 것이었다
빨간 미니벨로 남자는 이어서 말한다
"<GQ>에서 봤어요."
알고 보니 이 자전거포 '두부공'은 국내에서도 흔치 않은 수제 프레임을 제작하는 곳이었다
벽에 붙은 상장 같은 것은 미국에서 수료한 자전거 제작 과정 수료증이었다
공기를 빵빵하게 채우고 한강으로 나섰다

최대한 천천히 운행했다
어떤 할아버지 라이더의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며 성산대교 쪽으로 여유로운 라이딩을 즐겼다
난지지구까지 가니 어쩐지 라면이 먹고 싶어 컵라면을 구입해서 먹었다
비둘기가 자꾸 고여 짜증이 났는데 마침 '나는 꼼수다 18회'가 업데이트 되었다는 소식을 트위터에서 접하고 다운로드 받았다
'나는 꼼수다'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왔던 길을 다시 가는 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상암 월드컵 공원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킥킥 거리며 월드컵 공원으로 접어들었다
하늘공원과 연결된 구름다리가 보여 생각 없이 다리를 건넜다
근사한 사이클 저지를 입고 로드사이클을 타는 두 남자가 보였다
투르 드 프랑스에도 출전하는 'TEAM SAXO BANK' 저지를 입고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이 제법 사이클리스트 같았다
얼떨결에 이 이들을 따라가는데 코너를 돌자마자 하늘공원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보였다
그새 로드사이클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했다
쪼리를 신고 동네 마실 나온 라이더가 갑자기 업힐이라니 당최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어차피 할일도 없으니 도전해보았다
30미터 정도 오르니 땀이 나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이쯤에서 포기하면 신나게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위치다
문득 오르막길 입구에 세워 놓은 경고문이 떠오른다
"내려올 때는 자전거에서 내리세요"
사고가 좀 있었던 모양이다
경사가 가파르니 이런 길을 내려갈 때 브레이크를 잡지 않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어 보이긴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노원구 공릉동 월게동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위대한 정치인 17대 국회의원 정봉주와 정통 시사주간지 주진우 기자는 이빨을 신나게 까대고 있었다
라이딩 중에 헤드폰을 쓰는 행위는 자전거 동호회 회원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쪼리를 신고 라이딩에 나선 나는 동네 라이더에게는 별 상관이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열심히 페달을 굴리는 사이에 서울대공원의 코끼리열차 같은 전기 카트가 유유히 지나간다
괜히 더 도전의식이 생겨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스치는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생략
내키면 다시 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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