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를 보고 조촐한 치맥 자리에 갔었다
같은 영화를 본 시사주간지의 정치팀장과 문화팀장이 합석했다
정치팀장은 <옥희의 영화>를 보면서 각자의 개인적 체험이 중요한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문화팀장은 <씨네21>의 설레발을 지적하며 <옥희의 영화>가 그렇게 훌륭하지 않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개인적 체험이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하며 영화를 보면서 떠올린 나의 개인적 체험을 얘기했다

-
<옥희의 영화>는 <하하하>와 비슷한 느낌이다
<옥희의 영화>는 같은 인물의 다른 시기를 보여준다
<하하하>는 같은 공간의 다른 인물을 보여준다
그리고 두 영화에서 인물들은 미묘하게 겹친다
홍상수 감독은 이런 식으로 공간과 시간을 영화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수정>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옥희의 영화>에는 문성근, 이선균, 정유미가 등장하는데
문성근이 송교수일 때 이선균은 남선생이고
문성근이 송선생일 때 이선균은 학생이다
반면 정유미는 계속해서 그냥 옥희다
문성근과 이선균은 모두 옥희를 좋아한다
옥희는 문성근도 좋아하고 이선균도 좋아한다

<옥희의 영화>는 <하하하>보다 감성적이다
<하하하>에서는 김영호가 이순신으로 나와
좋은 것만 보라는 말을 하며 어떤 메시지를 전한다는 느낌이 있다
<옥희의 영화>에서는 문성근의 캐릭터 변화가 눈에 띈다
에피소드가 진행되면 될 수록 문성근은 순수해진다
그 마지막은 옥희가 만든 영화라고 소개되는
동명의 네번째 에피소드에서 절정을 이룬다

내가 느낀 <옥희의 영화>의 감상은 이 정도다
이 감상평은 <씨네21> 편집장의 에디토리얼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그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제 처음에 얘기를 꺼냈던 시사주간지의 두 팀장의 코멘트에 대한 코멘트를 덧붙이려 한다

-
먼저 정치팀장의 코멘트
나의 개인적 체험은 이런 거다
대학시절 문학평론가 교수가 있었고, 그 교수에게 지금 생각하면 어이 없지만
평론가로서 재능이 있는 것 같냐는 물음을 던졌다
당시 나는 사진에 관심이 있었고, 사진 관련 평론서 읽기를 좋아했다
덕분에 몇 가지 철학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은 국문과 수업에도 다소간 도움이 되었다
<옥희의 영화>의 ‘폭설 후’라는 에피소드에서 이선균과 정유미는
송선생이던 문성근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지고
문성근은 꽤 그럴 듯한 대답을 한다
이선균이 “제가 영화에 재능이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문성근이 대답하기를 “많이 찍어보면 안다”고 답한다
나의 경우 그 교수가 어떻게 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이상한 질문을 던질 때 꽤 긴장했고 용기를 짜냈던 기억은 생생하다

다음은 문화팀장의 코멘트
<씨네21>을 만드는 입장이지만 ‘놀라운 영화’라고 평한 정한석 선배의 긴 글을 아직 읽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도 얼마간 이 영화가 그렇게 걸작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문화팀장의 코멘트를 좀더 자세히 말하면 이렇다
영화 속의 주된 배경이 대학 영화과이고 등장인물이 교수와 강사, 학생인 것처럼
이를 테면 <옥희의 영화>는 대충 만들어도 이정도는 만든다라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옥희의 영화>에 빗대어 내가 생각해보면 송교수가 학생들에게 보여줄 영화라고 볼 수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다 보지는 못했다
나의 기억 속에 있는 홍상수 영화 중에 <오!수정>과 <생활의 발견>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극장전>은 또렸하고
<강원도의 힘>과 <해변의 여인>은 본 기억은 있느나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밤과 낮>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밖에 보지 않은 영화도 있다
최근 몇년 간의 홍상수 감독 영화에 전혀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겠지만
<하하하>를 기점으로 연장선상에 있는 <옥희의 영화>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이 영화를 촬영할 때의 스탭은 모두 4명뿐이었고
제작비는 5000만원이다
영화가 매우 간소하다
홍상수의 형식은 상업영화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점점 더 간결해지고 있다
하나의 컨셉과 하나의 문법으로 정형화되는 느낌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문화팀장의 코멘트에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다

결국 <옥희의 영화>는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민망한 과거의 기억과 영화적 감동 혹은 재미에 대한 판단들
한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동시대에서 본다는 것은 분명 꽤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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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고 싶은 말
왜 홍상수 감독의 몇몇 영화에서 어리고 예쁜 여자들이 늙은 남자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 점이 정말 싫다
더 나이가 들면 알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옥희의 영화
감독 홍상수 (2010 / 한국)
출연 이선균,정유미,문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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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나 보러 가야겠다

주말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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