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밀대에 냉면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예전에 일했던 출판사에서 같이 있던 형을 만났다. 당시 호칭으로 '팀장님'이라고 해야 되지만 그냥 형이라고 부르고 싶다. 아무튼 그때가 5월이었는데 벌써 을밀대에 냉면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을 시기였다. 냉면 먹겠다고 줄을 섰는데 팀장 형이 바로 앞에 있었다.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나는 이혼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당연히 '술 한 잔 해야지'라는 말이 나왔다. 그렇게 술 한 잔을 하기까지는 두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7월초, 한여름에 굴찜집에서 팀장형과 출판사에서 함께 일했던 다른 형까지 세 명이 모였다. 우리의 대화는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은 김금희 작가로 시작됐다.

김금희 작가가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다. 내가 제작에 참여했던 잡지에 인터뷰가 실렸다는 사실을 알고 '진짜 잘나가는구나' 싶었다. 지금 같이 일하는 후배에게 '그 작가 소설이 진짜 좋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결국 알라딘에 <너무 한낮의 연애>를 주문했다. 배송 받은 책은 4쇄였다. 내가 출판사에 일할 때 만든 책은 4쇄는커녕 2쇄도 없었을 거다. 게다가 지금은 다 절판 됐겠지. 

다시 두 달만에 성사된 술자리로 돌아가보면, 이런 대화가 오갔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나였다. "김작가가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찐따'인데… 김 작가가 그렇게 잘나가는 작가가 되는 걸 보니 신기하다." 팀장형은 "진따가 뭐냐고" 뭐라고 했다. 

김작가는 내가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시작한 출판사의 팀장이었다. 그래 봐야 둘의 나이는 동갑이고 그때 우리는 고작 28살이었다. 김팀장이 하나뿐인 팀원인 나를 데리고 회의를 했다. 나는 늘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별로'라고 불평만 늘어놓았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서 섬뜩하다. 지금 팀장에게 갑자기 좀 미안한 기분도 든다. (출판사 시절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팀장이 되지 못했다.) 어쨌든 그런 시절을 보내면서도 김팀장이 사람이 좋았던 건지, 우리는 김팀장의 남자친구(곧 남편이 된다), 을밀대에서 만났던 팀장형 등과 같이 잘 어울려 다녔다. 술자리에서 김팀장의 당시 남자친구가 해준 말에 따르면 "OO씨(나) 때문에 김팀장이 스트레스 엄청 받고, 막 꿈에도 나온다"고 했다. 직원이 고작 해야 10명인 출판사에도 '니편 내편'이 있었다. 사장은 매출에 대한 압박을 했던 것 같다. 말단 직원이었던 나는 그런 사정은 모르고 그저 팀장에게 "우리가 왜 이런 걸 해야 하냐"고 투덜댈 뿐이었다. 1년 반만에 나는 출판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김팀장도 곧 출판사를 그만뒀다.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10년이 지나 김팀장 아니 김작가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는 김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너무 한낮의 연애>를 아직 다 읽지는 않았는데 이상한, 괴상한, 쓸데없는 집착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 나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 나오지 않을까 유심히 읽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이가 없긴 한데 '조중균의 세계'라는 단편을 읽다가 '샹송을 부르는 직원'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출판사에서 일했던 또다른 누군가가 단박에 떠올랐다. 나를 모티브로 한 인물은 없는 것 같다.

김작가와 인터뷰했던 후배 기자에게 "혹시 김금희 작가가 내 얘기 안 했니?"라고 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만약에 김작가가 내 얘기를 안 했다면 머쓱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이런 글을 싸질러 놓는 걸 보면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찐따'가 맞는 것 같다.

소설을 읽었으면 '허접'하더라도 감상문을 써야 하는데 쓸데없는 얘기만 늘어놓았다. 나는 왜 김작가의 소설에서 나의 흔적을 찾았던 걸까.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욕망은 도대체 왜 생기는 걸까. 나를 기억할 법한 그 사람이 유명해졌다는 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설령 김작가를 정말 오랜만에 만나게 되더라도 유명 작가와 독자로 만나지는 않을 테니까. '너무 한낮의 연애'의 주인공처럼 나는 지금,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결론을 말하자면 김팀장은 훌륭한 김작가가 됐다. 내가 이런 뻘글을 블로그에 거의 6개월 만에 쓰게 만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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